소크라테스, 문답법(산파술)로 무지를 일깨워준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로, 일반적으로 공자, 예수, 석가와 더불어 세계의 4대 성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접 남긴 저술은 한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참지식은 글이나 문자로 전달되지 않으며, 오로지 생생한 대화를 통해서만 전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방안에만 박혀서 사색만 하지 않고, 아테네 광장이나 길가,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면서 신분,지위, 재산, 연령등에 무관하게 사람들과 거리낌없는 대화와 토론을 하였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으면서 자기 스스로 무지를 자각하게 만드는 철학적 교수법으로 유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주요 업적인 소크라테스식 문답법(The Socratic Method)이다.

문답법은 다른말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 산파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 재밌는 것은 자신의 활동을 산파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산파란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때 고통을 최소화하고 좀더 수월하게 낳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말하는데, 소크라테스의 어머니의 직업이 산파였다고 한다. 즉 소크라테스 자신은 직접 새로운 지혜를 낳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지혜를 낳고 깨우치는데 산파처럼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파술의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이렇다.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라는 청년과 대화를 나눈다.

소 : 자네는 정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트: 강자의 이익이 곧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 : 강자도 당연히 사람이지?

트 : 당연하죠.

소 : 그렇다면 강자도 실수를 범하겠군.

트 : 그렇죠.

소크라테스 : 그러면 강자의 실수, 잘못된 행동도 정의라고 볼 수 있나?

트 : 할말없음..

이처럼 상대방에게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상대가 이 질문에 응답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되며, 비로소 무지(아는 것이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무지를 깨달아야만, 참된 진리를 찾기 위한 토대가 완성되며, 그 토대를 기반으로 참된 진리와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소피스트 비판

소크라테스가 살던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 아테네에 수많은 소피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소피스트(Sophist)란 고대 그리스에서 수사학, 웅변술, 변론술, 교양 등 각종 주제들을 가르치던 사람들을 말한다. 원래는 현자, 알고 있는 사람, 지식을 주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부정적인 뜻으로 바뀌어 궤변가의 의미가 짙어졌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테네는 민주정이 실시되고 있었고, 토론문화가 발달하여, 귀족이나 시민들은 아고라(고대 그리스의 광장)에 모여서 토론을 벌이곤 했다. 또한 재판절차에 있어서도 당사자가 시민들 앞에 직접 나가 스스로를 변론하고, 이를 시민들이 투표해 판결이 내려지곤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타인을 설득하는 언변이 훌륭한 사람일수록 재판에서 승소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피스트를 통해 변론술을 익히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참된 진리 추구는 하지 않고 실익을 얻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지식을 팔아먹고 사람들의 눈을 흐려지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문답법을 통해 사람들과 소피스트들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변론>에 나오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이렇다. 소크라테스의 친구 칼리아스가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하나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가장 현명한 이는 소크라테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믿을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시인, 정치인, 소피스트 등 지식이 있고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찾아가 문답법으로 질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소크라테스의 성에 차지 않았고, 그들은 무지하면서도 스스로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라는걸 알게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저들보다, 무지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자신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레고리 블라스토스(Gregory Vlastos)는 무지를 자각하게 해주고 철학적 탐구를 가능하게 해주는 산파술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하고 있다.

비록 소크라테스는 70세에 불경죄로 아테네 법정에 고발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71세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지만, 그는 서양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닦고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수제자인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써 우리에게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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